2002년, 한양에서 함양으로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했던 그해,
한 남자는 조용히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출발
2002년, 국민 모두가 월드컵으로 시끌벅적한 해였습니다. 그해 늦은 여름 한양에서 살던 저는 조용히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잘나가던 포도청(경찰) 7년 근무를 뒤로한 채,
월급으로 모은 전 재산을 탈탈 털어 경매로 나온 농장을 낙찰받았습니다.
농장 바로 옆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둑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수십 그루 줄지어 있었습니다.
심심이 피곤하던 참에 시골에 가서 펜션이나 하나 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싶었습니다.
시행착오
세상일이란 게 내 뜻대로 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시골에 내려오니 펜션이고 뭐고, 당장 먹고 살기가 막막했습니다.
성급한 마음에 몇 가지 사업이랍시고 투자를 했는데,
역시 세상은 날고 기는 놈이 수두룩 빽빽했습니다.
한양 포도청에서 날아다니던 포졸이었건만,
바깥세상에서는 새로운 초보였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추락하는 무엇에는 날개가 없다더니, 이러다가 개쪽박 차고 다리 밑에 거지꼴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환
세상은 아무도 믿을 놈이 없다는 로고를 가슴에 새기고, 악으로 깡으로 군바리 포졸 정신으로 하나하나 밀고 왔습니다.
십이 년 동안 오줌 한번 제대로 서서 보지 않고, 일출 일몰을 출퇴근 삼아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뛰어다녔습니다.
이젠 제법 많은 소들이 축사 안을 꽉 채웠습니다. 현재 한우 비육만 370두입니다.
가족
혼자였으면 오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제일 힘이 되어준 사람이 아내입니다.
잘나가던 시티 샥시를 시골 흙(소똥) 먼지 날리는 곳으로 꼬셔 왔으니, 울 장인어른은 요즘도 가끔 푸념을 하십니다.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고 살아온 오리지널 시티 걸이었는데, 낯선 시골생활에 지칠 법도 한데 큰 불만 없이 날 따라와 주었습니다. 가끔 텃밭에서 벌레를 보고 소스라치게 소리를 지르는 것 빼곤, 완전 시골 아낙이 되어버렸습니다.
마냥 청춘인 줄 알았는데, 늘어난 소 숫자만큼 내 나이도 늘어나 버렸네요.
오늘, 그리고 내일
내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소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화식발효사료를 직접 만들고, 미경산우를 정성껏 장기 사육하며, 생산부터 판매까지 직접 책임집니다.
함양의 맑은 공기와 정성이 담긴 저희 한우를 만나보세요.
"집 앞 장독대에서 한 주걱 갓 퍼 온 된장처럼,
텃밭에서 퇴비로 키운 상추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바른 먹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